CAPITOME · NOTE · 2026-06-22

규칙이 세계가 될 때

셀룰러 오토마타에서 Gerard 't Hooft의 초결정론까지 —
그리고 주체와 객체는 끝내 갈라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이 글은 셀룰러 오토마타가 왜 아름다운가에 대한 한 대화에서 자라났습니다.

RULE 30 한 칸은 자기 양옆만 본다. 규칙은 8비트. 그런데 아래로 자라난 무늬는 통상의 통계 검정을 통과할 만큼 난수처럼 보인다.

I 단순한 규칙, 창발하는 세계

셀룰러 오토마타의 진짜 맛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각 칸은 옆 칸만 보고 아주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데, 전체를 보면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규칙은 몇 줄인데 패턴은 예측 불가능하게 풍부하다.

  • 복잡함이 설계되지 않고 생겨난다. 아무도 그 무늬를 그리지 않았는데 무늬가 나온다.
  • 로컬 규칙 → 글로벌 질서. 한 칸은 전체를 모르는데, 전체는 구조를 만든다.
  • 계산과 자연의 중간. Game of Life, Rule 30, Rule 110 — 거의 "우주 장난감" 같다.
  • 사회·시장의 모델. 개인은 주변만 보고 반응하는데, 전체엔 유행·군집·붕괴·안정이 생긴다.

제일 묘한 건 이 감각이다 — 지능이 꼭 중앙 통제에서 나오는 게 아닐 수 있다. 단순한 규칙들이 쌓이면 세계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II 지름길이 없다 — 계산 불가역성

여기서 한 발 들어가면 오싹해진다. 위에 떠 있는 Rule 30은 한 줄짜리 규칙인데, 나오는 수열이 통상의 통계 검정을 통과할 만큼 난수처럼 보인다(암호학적으로 안전하진 않다). Mathematica는 실제로 Rule 30을 의사난수 생성에 쓴다. 질서가 겉보기 무작위를 낳는다.

Rule 30이 100스텝 뒤에 뭐가 될지 알려면, 지름길 공식이 없다. 그냥 100스텝을 실제로 돌려보는 수밖에 없다.

이게 계산 불가역성(computational irreducibility)이다. 우주의 어떤 미래는 "미리 계산"되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만" 알 수 있다. (물론 Rule 90처럼 닫힌 공식이 있는 얌전한 규칙도 있다 — 불가역성은 일부 시스템의 성질이고, 증명된 정리라기보다 강한 추측에 가깝다.) 그리고 흥미로운 일은 늘 경계에서 일어난다 — 너무 질서정연하면 얼어붙고, 너무 혼돈스러우면 노이즈다. 계산과 생명은 그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 Wolfram의 Class 4, Langton의 λ가 어렴풋이 가리키는 좁은 칼날 위에서 산다(이 셋을 정확히 같다고 보는 통념엔 반론도 있다).

그리고 Rule 110은 튜링 완전이다. 냅킨에 적을 수 있는 1차원 규칙 하나가 원리상 모든 계산을 할 수 있다. Conway의 Game of Life 안에서 사람들은 논리 게이트, 메모리, 심지어 Life 안에서 도는 Life까지 만들었다. 보편 계산이 그렇게 사소한 데 숨어 있다.

III 우주가 셀룰러 오토마타라면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든다 — 우주 자체가 이걸로 되어 있다면? 진지하게 그렇게 주장한 사람이 네덜란드 물리학자 Gerard 't Hooft(헤라르트 엇호프트)다. 199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지도교수 Martinus Veltman과 공동 — 전기약 상호작용의 양자구조 규명), 표준모형의 수학적 일관성을 세운 사람 중 하나. 변두리 괴짜가 아니라서 더 무게가 실린다.

그가 2016년에 낸 책이 The Cellular Automaton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 핵심 주장:

  • 가장 밑바닥(플랑크 스케일)에서 우주는 결정론적 셀룰러 오토마타다. 칸들이 정해진 규칙대로 한 스텝씩 굴러갈 뿐, 진짜 우연은 없다.
  • 양자역학의 확률·중첩은 창발한 통계적 표면층이다. 밑의 결정론적 셀 상태(ontological states)를 우리가 다 못 봐서 확률로 뭉뚱그릴 뿐 — 그 위에서 대각인 관측가능량을 Bell을 따라 beables라 부른다.

즉, "로컬 결정론 규칙 → 글로벌 창발"을 극한까지 민 버전이다. 양자역학의 그 유명한 무작위성마저도 "사실은 밑에서 결정론적으로 굴러가는 셀을 우리가 못 보는 착시"라는 것이다. 계보로는 Konrad Zuse의 Rechnender Raum(계산하는 공간, 1969), Edward Fredkin의 digital physics, Wheeler의 "It from bit"가 있다. (우주=계산을 말하는 Stephen Wolfram도 셀룰러 오토마타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의 Physics Project에서는 하이퍼그래프 재작성으로 옮겨가 't Hooft와는 다른 길을 간다.)

IV 비싼 대가 — 초결정론과 벨

여기엔 비싼 값이 따른다. 먼저 두 가지 "정해져 있음"을 구별해야 한다. 그냥 결정론(뉴턴의 시계태엽 우주)은 수백 년 된 얘기고, 결정론적이어도 과학은 멀쩡히 돌아갔다. 세상을 안 망가뜨린다.

문제는 초결정론(superdeterminism)이 한 술 더 뜬다는 점이다. 추가 재료는 "음모(conspiracy)"

네가 뭘 측정할지 고르는 그 선택이, 측정당하는 입자의 숨은 상태와 콕 집어 상관되어 있다. 그것도 양자 결과를 가짜로 재현하도록 딱 맞게.

왜 이 막다른 길로 가야 하나? 벨 부등식(Bell's theorem) 때문이다. 벨이 증명한 것은: "밑에 결정론적 규칙이 깔려 있고 그게 무작위처럼 보일 뿐"이라는 가장 소박한 그림(국소 숨은변수)으로는 양자 얽힘의 상관관계를 절대 못 만들어낸다. 그리고 실제 실험(Aspect·Clauser·Zeilinger, 2022년 노벨물리학상)이 이걸 검증했다. 그러니 "작은 규칙성이 큰 무작위로 보인다"의 순진한 버전은 실험으로 이미 죽었다.

유일하게 빠져나갈 구멍이 측정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 — 즉 "측정 장치를 어떻게 세팅할지조차 빅뱅 때부터 셀들과 함께 정해져 있었다"는 초결정론이다. 그래서 벨의 가정이 깨지며 구멍이 생긴다. 대신 자유 선택과 실험의 독립성을 대가로 내놓는다.

벨이 못 박은 것 — 아래를 다 지키면서 양자 상관을 재현할 수는 없다 (2022 노벨로 실험 확정)
국소성멀리 떨어진 것끼리 즉각 영향 못 줌
실재성객체가 관측과 무관하게 확정된 성질을 가짐
측정 독립성주체가 객체와 무관하게 자유로이 선택

엄밀히는 벨 정리의 정식 형태가 국소성측정 독립성의 결합이 양자 예측과 충돌함을 보인다. '실재성'은 독립된 세 번째 꼭짓점이라기보다 국소성과 얽혀 EPR 논변으로 끌려 들어오는 항목이다. 위 3분할은 직관을 위한 단순화로 읽자.

V 주체와 객체는 갈라지지 않는다

여기가 이 노트의 심장이다. 양자역학부터 초결정론까지, 한 줄기 주제가 흐른다 —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격리는 어떤 식으로든 깨진다. 다만 "간섭한다"에는 방향이 정반대인 두 결이 있다.

  • 결 A — 관측이 곧 상호작용 (앞으로, 측정하는 순간). 객체를 보려면 반드시 건드려야 하고, 건드리면 상태가 바뀐다. 게다가 맥락성(contextuality, Kochen–Specker)으로 인해 입자의 성질은 "원래 거기 있던 고정값"이 아니라 무엇을 같이 측정하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Bohr의 "관측자와 대상 사이에 깔끔한 칼금을 그을 수 없다"가 이것.
  • 결 B — 초결정론 (뒤로, 빅뱅부터). 간섭이 측정 순간에 생기는 게 아니라, 네 선택과 입자의 숨은 상태가 처음부터 한 뿌리로 엮여 있었다. 결론은 같은데 메커니즘이 정반대다.

그리고 둘을 묶는 정리가 벨이다. 모든 해석은 결국 "어느 격리를 포기할까"의 선택일 뿐이다.

해석은 어느 벽을 부수느냐만 다르다
코펜하겐실재성 포기 — 측정과 무관한 확정값을 말하길 거부(붕괴 수용)
봄(Bohm)국소성 포기 — 다 비국소로 연결
다세계단일 결과 포기 — 주체가 객체와 같이 갈라짐
초결정론 ('t Hooft)측정 독립성 포기 — 주체 선택이 객체와 상관

딱 하나 함정. "주체 = 의식"으로 읽지 말 것. 양자역학의 "관측자"는 사람·의식이 아니라 그냥 상호작용·결어긋남(decoherence)이다. 먼지 한 톨이 부딪쳐도 "관측"이고, 초결정론의 "주체"도 그냥 측정 설정 변수다. (단 결어긋남은 왜 세계가 고전적으로 보이는지를 설명하지, 왜 하필 하나의 결과만 실현되는지까지 끝내주진 않는다 — 그 잔여는 해석의 몫이다.) "의식이 현실을 바꾼다"는 낭만적 점프는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셀룰러 오토마타 그림으로 돌아오면 이게 제일 노골적이다. 너(주체)도 입자(객체)도 같은 격자에서 같은 규칙으로 굴러가는 같은 천의 일부일 뿐이다. 둘 사이에 근본적 경계가 애초에 없다. 그래서 "격리 불가"가 신비가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 된다 — 한 컴퓨터 안에서 도는 두 영역이 어떻게 완전히 독립이겠는가.

VI 그래서 다들 반대한다

그럼에도 초결정론은 주류가 아니다. 비판은 센 순서로 여섯 갈래다.

  1. 음모·파인튜닝. 너는 측정 설정을 130억 광년 떨어진 퀘이사 빛으로도, 로또 번호로도, 그냥 변덕으로도 고를 수 있다. 우주가 상상 가능한 모든 실험 배치마다 미리 짝을 맞춰놨어야 한다. 음모 하나가 아니라 무한히 많은 완벽한 우연의 일치다.
  2. 과학 방법론 자기파괴. 측정 독립성은 모든 실험의 대전제(대조군을 자유로이 짠다)다. 그걸 팔면 어떤 통계 추론도 못 믿는다. Zeilinger는 실험자의 자유로운 선택이 과학의 암묵적 전제이며, 이를 포기하면 자연에 질문을 던지는 실험이라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3. 작동하는 모델·새 예측이 없다. 'tHooft는 벨 실험 통계를 실제로 재현하는 구체적 셀룰러 오토마타를 내놓은 적이 없다. 전부 "원리상 된다" 스케치이고, 표준 양자역학과 구별되는 새 예측이 0이다.
  4. 해밀토니안 하한 문제. 안정한 진공이 있으려면 에너지가 아래로 유계여야 하는데, 결정론적 CA를 양자계로 사상하면 보통 유계가 안 되는 해밀토니안이 나온다. 이걸 메우는 장치를 비판자들은 임시방편으로 본다.
  5. 신비를 없앤 게 아니라 옮긴 것. 측정 문제를 풀었다지만, 대신 "왜 초기조건이 그렇게 환상적으로 파인튜닝됐나"라는 더 큰 미스터리가 생긴다. 설명 장부의 총합은 안 줄고 자리만 이동한다.
  6. 더 싼 라이벌이 있다. 역인과(retrocausality) 진영(Huw Price, Ken Wharton 등)은 측정 독립성 위반을 "우주적 음모" 없이 설명하는 더 값싼 길이라 주장하며, 스스로를 초결정론과 명확히 구분한다(Palmer의 불변집합 이론도 "역인과 없이"를 표방한다). 즉 둘은 같은 진영이 아니라 경쟁 프로그램이고, 완전 초결정론은 그중 제일 극단·비싼 쪽으로 취급된다.

공정하게. 초결정론은 반증된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막혔다"가 아니라 "감당 못 할 만큼 안 경제적이고, 아직 작동 모델을 안 내놨다"가 주류의 판정이다. 옹호자는 Sabine Hossenfelder, Tim Palmer(프랙탈 기하의 불변집합 이론) 정도로 소수지만 진지하다. "벨 루프홀 중 유일하게 안 닫힌 게 측정 독립성인데 왜 아무도 진지하게 안 파냐"는 그들의 반문도 일리는 있다.

· 닫는 말

모든 비판이 한 점을 찌른다.

세상을 결정론적 셀룰러 오토마타로 되돌리는 값이, 양자역학을 그냥 받아들이는 값보다 정말 싼가?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아니"라고 답한다 — 네가 치는 값(우주적 음모)이 네가 없애려는 신비(양자 무작위)보다 더 비싸다고. 그래도 한 감각은 남는다. 설계자도, 청사진도, 미래를 미리 보는 시점도 없는데 — 그냥 규칙이 한 칸씩 굴러가는 것 자체가 세계를 만들어낸다. 예측이 곧 실행이고, 실행 외엔 예측이 없는.